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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ACC 레지던시 도록]

박혜진, 퍼포먼스의 다층적 의미들, 2023

‘퍼포먼스’의 다층적 의미들: 정아람의 <관심 연습> 연작

박혜진
독립큐레이터

<관심 연습> 연작은 정아람이 2022년부터 지속해 온 협업 기반 프로젝트로, 개인의 생산성과 효율성에 큰 가치를 두는 사회에서 개인의 노동하는 신체가 의미하는 바를 탐구하는 작업이다. 2023 ACC 레지던시 결과발표전 《행성공명》에서 선보인 작업들도 이 연작의 연장선에 있기 때문에, 전시된 두 작업 <관심 연습: 사운드>(2023)와 <관심 연습: 공동의 시선 II>(2023)는 작가가 본 결과발표전 이전부터 지속해 온 <관심 연습> 연작 전반과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

<관심 연습: 사운드>는 여러 과정이 겹겹이 쌓인 작업으로, 플랫폼 배달 라이더의 배달 과정을 독특한 방식으로 기록한 영상 작업 <관심 연습: 공동의 시선>(2022)에서 출발한다. 소비자가 물건이나 음식 등을 디지털 플랫폼에서 주문하면 배달 라이더는 주문내역을 재빨리 배달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시간이므로 이들은 몸을 쉴 새 없이 움직여야 한다. 정아람은 바삐 움직이는 배달 라이더의 모습을 직접 촬영하여 보여주는 대신, 특별한 장치를 활용해 라이더들이 하나의 업무를 완수하기 위해 이동하며 보게 되는 풍경과 그들의 시선이 꽂히는 위치를 보여준다. 작가와 협업한 배달 라이더 세 명은 각각 안경 비슷한 웨어러블 기기를 쓰고 배달 업무를 수행하는데, 이 과정에서 라이더들의 시선이 머물고 움직이는 전 과정이 기기를 통해 제3자에게도 공유되는 것이다. 이동 중 나타나는 풍경 위에 핑크색 점과 선으로 표시되는 라이더의 초점의 기록과 흔적은 배달 업무를 시작하는 때부터 완료하는 순간까지 그대로 노출된다. 이렇게 보여주는 ‘1인칭 배달 라이더 시점’은 보이지는 않지만 빠르게 움직이고 있을 그들의 신체만큼이나 바쁘고 급하다. 시간과 싸우며 이동 노동으로 수익을 창출하는 배달 라이더에게 중요하는 것은 결과다. ‘배달 완료’라는 결과에 도달한 후에는 배달의 과정이 더 이상 남아있지도, 보이지도, 중요하지도 않다.

이렇게 배달 라이더들과 제작한 <관심 연습: 공동의 시선>은 2023년, 밀키트 제작 작업자들과 협업한 <관심 연습: 공동의 시선 II>(2023)로 이어진다. 배달 라이더들과 마찬가지로 밀키트 작업자들은 웨어러블 기기를 쓰고 작업하기 때문에 이들이 일하며 보는 주변 환경과 초점의 움직임이 영상을 통해 관객에게 전달된다. 배달 라이더들이 보는 바깥 풍경보다 좁은 폭으로 움직이는 밀키트 작업자의 시선은 포장 작업대, 개수대, 육류 커터기 등을 중심으로 식재료 세척, 손질, 포장 등의 세분화된 분업 노동하는 시점을 보여준다. 근거리의 실내공간을 반복해서 바쁘게 오가는 작업자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어지럽기까지 하다. 그러나 소분되고 손질된 식재료들은 포장 작업에 들어간 인간의 노동과 시간을 지운 뒤 깔끔하게 포장되고, ‘간편함’과 ‘빠름’으로 무장해 소비자들의 사랑을 받는다.

배달 라이더와 밀키트 작업자는 비교적 최근에 생긴 신종 노동직이다.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 속에서 보다 편리하고 효율적으로 생활하기 위해 ‘내가’ 직접 들여야 하는 노동력과 시간을 아웃소싱해 돈으로 사는 것이다. 이렇게 돈과 교환한 타인의 노동력은 물질화/도구화되고, 비대면 디지털 플랫폼 등을 매개로 하기 때문에 비인간화되며, 마치 사회가 첨단화되고 많은 부분이 자동화된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정아람의 작업을 보노라면 겉으로 보이는 결과 뒤에는 여전히 인간이 수행할 수 밖에 없는 미세 노동과 반복 노동이 수없이 존재하며 그 과정 없이는 효율적인 생산성에 큰 가치를 부여하는 현대사회가 지금처럼 작동하기 어렵다는 사실이 확인된다. 작가는 이 점을 신체 노동을 대상화해 직접 촬영하는 방식을 택하지 않고 배달 라이더, 밀키트 작업자와 관객의 시점을 일치시키는 방법으로 그들이 들이는 물리적 시간과 노동의 전과정을 관객이 직접 겪게 함으로써 드러낸다. 내가 들여야 할 물리적 노동이 그저 다른 사람의 몫으로 대체되었을 뿐이라는 사실을 온전히 ‘느끼게’ 하는 것이다.

한편, 작가는 ‘노동’과 관련된 주요 단어들을 세 가지의 관점, 즉, ‘노동 재해’, ‘노동 감정’, ‘노동 가치’의 기준에서 수집해 <관심 연습: 일의 세계>(2022)라는 평면 작업도 제작했다. ‘노동 재해’는 노동하며 발생하는 직업별 재해들을 표현하는 단어 모음으로, 과로, 감전, 폭력행위, 근골격계 질환, 교통사고 등과 같은 키워드들로 구성된다. ‘노동 감정’은 신경질, 조급함, 한탄, 도덕적 만족감 등 노동하며 느끼는 감정들의 모음이다. ‘노동 가치’는 안정성, 성취, 책임감, 모험 등과 같이 노동의 가치를 표현하는 단어들로 이루어져 있다. 단어들은 배달 라이더들의 시선이 머무른 지점을 연결한 선들이 만나는 곳마다 한 개씩 적혀 그물망처럼 연결되어 있는데, 이는 각각의 관점에 대한 관객의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게 만든다. 관객은 배달 라이더의 시선의 흔적을 따라가보며 각 관점에서 뽑아낸 단어들을 하나씩 곱씹게 될 것이다. 노동자의 노동이 현실에서 직접 ‘보이지는 않지만’, 그들이 겪게 되는 여러 감정과 신체적·정신적 영향을 미치는 단어들을 시각화함으로써 이들이 몸을 움직여 가치를 창출하는 ‘인간’임을 다시 한번 상기시키는 것이다.

<관심 연습: 사운드>는 앞서 언급한 작업들에서 출발한다. 관객 앞에 가로로 길게 뻗은 빈 영상화면이 설치되어 있다. 화면에는 초록색 원을 필두로 다양한 크기의 원이 연속적으로 여기저기 나타났다 사라지는데, 가장 최근에 등장하는 초록색 원을 제외한 나머지는 핑크색으로 표현되며, 원들을 잇는 선도 함께 보이므로 눈으로 그 역동적인 움직임을 계속해서 따라가게 된다. 이는 앞서 보았던 <관심 연습: 공동의 시선>에서 기록한 노동자들의 초점의 움직임을 데이터화 및 시각화한 것이다. 초점의 이동 위치와 머무른 시간 등의 수치가 데이터 값이 되어 원의 위치와 크기를 정한다. 그리고 원마다 단어들을 달고 등장했다가 일정 시간이 지나면 함께 사라진다. 자세히 살펴보면, 화면의 왼쪽에 등장하는 단어들은 ‘노동 재해’, 가운데의 단어들은 ‘노동 감정’, 그리고 오른쪽 단어들은 ‘노동 가치’에 대한 단어들의 모음임을 알 수 있다. 또한 원들이 화면에 등장할 때마다 다양한 높낮이와 길이의 트럼펫 음이 들린다. 곡이라기에는 일정한 박자나 멜로디 없이 나는 소리들이다. 그럼에도 리드미컬하게 들리는 이 음들은 정해진 규칙에 근거해 나는 소리이다. 원의 위치, 크기와 지속시간에 비례해 트럼펫 소리 또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정해지기 때문이다.

데이터화 작업을 거쳐 이전 작업들보다 은유적으로 변모한 <관심 연습: 사운드>에서는 <관심 연습: 공동의 시선>보다도 배달 라이더나 밀키트 작업자의 노동하는 신체와의 연결고리가 희미해진다. 현실에서 비가시화되는 신체 노동은 정아람 작업의 방법론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관객은 현실에서나 작업에서나 결과에는 부재하고 과정에만 존재하는 신체 노동을 역설적으로 인식하게 된다. 이를 통해 정아람은 ‘퍼포먼스’가 가진 다층적 의미를 보여주는 듯하다. 예술에서는 ‘공연’이나 ‘행위예술’의 의미로 쓰이는 이 단어가 일상에서는 ‘수행’의 의미를 띠고, 나아가 ‘성과’나 ‘실적’을 의미하기도 한다. 배달 라이더와 밀키트 작업자의 신체 노동은 ‘성과’와 ‘실적’으로 귀결되는 현대사회의 일면을 상징하는 퍼포먼스이면서, 개인이 일상을 살아가는 수행의 과정이자, 하나의 결과물로서 남지 않고 물리적 시간 안에서 신체의 움직임이라는 과정으로만 존재하는 행위예술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